분석

전기차 배터리 연 2.3% 닳는다…급속충전 잦으면 2배

지오탭이 전기차 2만2,700여 대를 분석한 결과 배터리는 연평균 2.3% 줄었다. 고출력 급속충전을 자주 쓴 차는 연 3.0%로 두 배였다.

전기차 초고속 충전기와 충전 중인 전기차
현대차그룹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설비 —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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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는 1년에 평균 2.3%씩 용량이 줄어든다. 글로벌 차량 관제(텔레매틱스) 기업 지오탭(Geotab)이 전기차 2만2,700여 대의 실주행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다만 100kW 이상 급속충전을 자주 쓴 차의 감소 폭은 연 3.0%로, 급속충전을 적게 쓴 차(1.5%)의 두 배였다.

시동뉴스는 이 데이터가 '배터리가 금방 망가진다'는 걱정보다 '충전 습관이 배터리 가치를 정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고 본다. 급속충전으로 아끼는 시간에는 배터리 수명이라는 비용이 따르고, 그 비용은 자주, 높은 출력으로 충전할수록 커진다.

2만2,700대 데이터가 보여준 연 2.3% 노화

지오탭은 1월 13일 21개 차종, 2만2,700여 대의 수년치 텔레매틱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배터리 건강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4월 28일 보고서 전문을 공개했다. 연평균 배터리 열화율은 2.3%로, 같은 회사의 직전 조사(11개 차종) 1.8%보다 높아졌다.

지오탭은 배터리가 나빠졌다기보다 차를 쓰는 방식이 바뀐 결과로 해석했다. 고객사 차량에서 급속충전이 전체 충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서 약 25%로 늘었고, 급속충전 평균 출력도 약 70kW에서 90kW 이상으로 높아졌다. 출시 초기 1~2년에 용량이 크게 빠지는 신차의 비중이 커진 것도 영향을 줬다. 기존 조사에 있던 11개 차종 가운데 8개 차종은 연 1.4% 수준으로 안정됐다.

배터리 상태는 SOH(State of Health)로 표시한다. 새 배터리는 100%에서 출발하며, 지오탭은 60kWh 배터리가 SOH 80%가 되면 48kWh 배터리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연 2.3%를 적용하면 8년 뒤 평균 SOH는 81.6%로 추산된다.

급속충전 비중과 출력이 8년 뒤 용량을 가른다

보고서에서 가장 큰 변수는 충전 출력이었다. 지오탭은 전체 충전 가운데 급속충전 비중이 12% 미만인 차와 이를 넘는 차를 나누고, 후자를 다시 100kW 초과 세션의 비율로 구분해 비교했다.

 충전 패턴연간 열화율8년 뒤 예상 SOH
저빈도 급속급속충전 12% 미만1.5%88%
고빈도·저출력급속충전 12% 초과, 그중 100kW 초과 40% 미만2.2%미공개
고빈도·고출력급속충전 12% 초과, 그중 100kW 초과 40% 초과3.0%76%

지오탭 보도자료는 이를 '최대 3.0%'로 표현했지만, 보고서상 3.0%는 급속충전을 자주, 그것도 고출력으로 쓴 그룹의 평균이다. 급속충전을 한 번이라도 쓴 차가 모두 이만큼 늙는다는 뜻은 아니다. 지오탭은 차를 5시간 이상 세워 두는 환경이라면 15분 만에 채우는 충전 설비는 과할 수 있다며, 운행에 필요한 가장 낮은 출력을 쓰라고 권했다.

전기차 플랫폼에 탑재된 고전압 배터리 팩
현대차그룹 전기차 플랫폼과 고전압 배터리 팩 —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완충·더위·주행량은 상대적으로 작은 변수

흔히 권하는 '20~80% 충전' 규칙은 생각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충전량이 80% 초과 또는 20% 미만인 시간이 전체의 50% 미만인 차의 열화율은 1.4%, 50~80%인 차는 1.5%로 거의 같았다. 이 비율이 80%를 넘는 차만 2.0%로 뚜렷하게 높아졌다. 지오탭은 제조사가 배터리 상·하단에 숨겨 둔 소프트웨어 여유분(버퍼)이 영향을 줄이는 것으로 봤다.

더위는 연 0.4%포인트를 더했다. 25℃를 넘는 날이 35%를 넘는 지역의 차가 온화한 지역의 차보다 빨리 늙었다. 주행량이 많아 충전 사이클이 잦은 차는 1.5%에서 2.3%로 0.8%포인트 높았다. 차급별로는 밴 등 다목적차(MPV)가 연 2.7%, 승용차가 2.0%였다.

국내 전기차에 그대로 대입하기 어려운 이유

이번 데이터에는 국내 차량이나 국내 기후가 따로 반영되지 않았다. 21개 차종은 익명으로 처리돼 개별 모델의 수치도 알 수 없다. 분석 대상은 지오탭 고객사 차량이어서 개인 차량의 사용 패턴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겨울도 빈칸이다. 지오탭은 일 년 내내 추운 지역의 표본이 부족해 혹한이 장기 열화에 미치는 영향은 따로 분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추운 겨울이 있는 국내 환경에서의 영향은 이번 조사로 판단할 수 없다.

보증 조건도 함께 봐야 한다. 현대자동차 보증기간 안내에 따르면 아이오닉 6 고전압 배터리에는 10년/20만km 특별 보증이 적용된다. 기아는 EV3 고전압 배터리를 개인 최초 고객 기준 10년/20만km 보증한다. 세부 조건은 차종별 보증서를 따른다.

반론: 연 3%여도 충분히 오래 간다는 시각

급속충전을 아낄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불리한 그룹도 8년 뒤 원래 용량의 76%를 유지한다는 추산이고, 지오탭 역시 대부분의 배터리가 일반적인 보유·교체 주기보다 오래 버틴다고 결론 내렸다. 충전 시간이 곧 비용인 운전자에게 급속충전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차이는 숫자로 남는다. 지오탭의 60kWh 예시에 그룹별 수치를 단순 대입하면 8년 뒤 사용 가능 용량은 저빈도 그룹 약 52.8kWh, 고빈도·고출력 그룹 약 45.6kWh로 7kWh 넘게 벌어진다. 지오탭은 배터리 열화가 주행거리와 성능, 잔존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자세한 수치는 지오탭 배터리 건강도 보고서와 지오탭 보도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동뉴스의 판단

배터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하지만 급속충전을 습관처럼 쓰면 노화 속도가 두 배 가까이 빨라진다는 점은 데이터로 확인됐다. 집이나 직장에서 완속충전이 가능한 운전자라면 급속충전을 장거리 이동용으로 남겨 두는 편이 배터리 가치를 지키는 길로 보인다. 국내 차종과 겨울철 데이터가 나오기 전까지 이번 수치는 정답보다 방향으로 읽는 것이 맞다.